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대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대선 결과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지역별 결과, rd1=제3대 대통령 선거/지역별 결과)] ||<-4> [[대한민국 대통령|{{{#ffffff {{{+1 '''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선거'''}}}}}}]]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5 '''1'''}}} || [[조봉암|{{{#373a3c,#dddddd 조봉암}}}]](曺奉岩) || 2,163,808 || 2위 || || [include(틀:무소속)] || 30.01% || 낙선 || ||<|2> --{{{+5 '''2'''}}}-- || ~~[[신익희|{{{#373a3c,#dddddd 신익희}}}]](申翼熙)~~ ||<|2><-2> 사망 || || [include(틀:민주당(1955년))] || ||<|2> {{{+5 '''3'''}}} || '''[[이승만|{{{#373a3c,#dddddd 이승만}}}]](李承晩)''' || '''5,046,437''' || '''1위''' || || [include(틀:자유당)] || '''69.98%''' || '''{{{#000000 당선}}}''' || ||<|3> {{{#black '''계'''}}} || '''선거인 수''' || 9,606,870 ||<|3> '''투표율'''[br]94.38% || || '''투표 수''' || 9,067,063 || || '''무효표 수''' || 1,856,818 || ||<-3> '''{{{#fff 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선거 지역별 개표 결과}}}''' || || 지역 || '''[[자유당|{{{#fff 자유당}}}]][br][[이승만|{{{#fff 이승만}}}]]''' || '''[[무소속|{{{#fff 무소속}}}]][br][[조봉암|{{{#fff 조봉암}}}]]''' || || 전국 || {{{#fff '''5,046,437[br](69.98%)''' }}} || 2,163,808[br](30.01%) || || 서울 || {{{#fff '''205,253[br](63.3%)''' }}} || 119,129[br](36.7%) || || 경기 || {{{#fff '''607,757[br](77.1%)''' }}} || 180,150[br](22.9%) || || 강원 || {{{#fff '''644,693[br](90.8%)''' }}} || 65,270[br](9.2%) || || 충남 || {{{#fff '''530,531[br](77.1%)''' }}} || 157,973[br](22.9%) || || 충북 || {{{#fff '''353,201[br](86.1%)''' }}} || 57,026[br](13.9%) || || 전남 || {{{#fff '''741,623[br](72.1%)''' }}} || 286,787[br](27.9%) || || 전북 || {{{#fff '''424,674[br](60.2%)''' }}} || 281,068[br](39.8%) || || 경남 || {{{#fff '''830,492[br](62.3%)''' }}} || 502,507[br](37.7%) || || 경북 || {{{#fff '''621,530[br](55.3%)''' }}} || '''501,917[br](44.7%)''' || || 제주 || {{{#fff '''86,683[br](87.9%)''' }}} || 11,981[br](12.1%) || [[파일:dd9c0531da6648d297b.jpg]] [[파일:vrankmap1956cho.jpg]] 보면 알겠지만 1,856,818표, '''전체 투표수의 20.5%는 무효표'''다. [[이승만]]에 대한 반대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이면엔 민주당의 반공정서가 존재해있다. ~~20.5% 줄 수 없어~~민주당은 사사오입헌법 개정과 잦은 선거 방해 공작에 이승만에게 질릴대로 질려버렸지만 조봉암같은 진보 인사에게 표를 내줄 생각은 없었다. 선거 전에 민주당와 진보당간의 후보 단일화 협상이 있었지만,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반대했던 이유도 이것이다. (단 부통령 후보는 진보당의 양보로 장면으로 단일화되었다.)[* 진보당측 대선 후보 조봉암은 처음에 민주당에게 대통령 자리는 민주당에 양보하고, 부통령은 진보당 측 후보인 [[박기출]]의 출마를 제안했으나, 민주당은 정,부통령 모두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를 원했다. 그러다 4월 25일 민주당 측 대선후보 [[신익희]]가 급사하자 상황이 급변해 대선후보는 조봉암으로, 부통령후보는 [[장면]]으로 단일화를 시도하였다.] 민주당은 신익희가 선거유세도중 사망하자 당 차원에서 유권자들에게 신익희는 죽었으나 추모표를 던져서 조봉암에게 표를 주지 말라고 요구했다. 사실 조봉암은 원래 민주당의 전신인 호헌동지회에 참여할려고 했으나 진보성향 때문에 거부당하자, 와신상담 끝에 독자적으로 혁신계 세력을 모아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다. 반면, 이승만에 대한 반감으로 [[야당]]이 강세였던 [[서울특별시]][* 그렇다고 조봉암을 찍지도 않았다. 민주당 계열은 이승만보다 조봉암을 더 싫어했던 것이다.]는 대통령 선거 유효투표 비율이 '''53.8%'''밖에 되지 않았다. 같은 날 치러진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선거에서의 서울 유효투표 비율이 96.4%에 이른 것과 비교해보자. 한편 [[진보]]계열 유력 정치인으로 떠오르던 [[조봉암]]은 [[신익희]]의 [[사망]]으로 갈곳 잃은 표 일부를 흡수[* 전국에서 신익희를 찍은 무효표가 넘쳤지만, 민주당의 세가 약했던 영/호남 4개 도에서는 신익희의 사망으로 붕 뜬 야권표를 확실히 조봉암이 흡수했다. 조봉암을 찍은 표가 무효표보다 많을 뿐 아니라 영남 20개 시군(대구 포함), 호남 4개 시군에서는 조봉암이 이승만을 이겼다. 일부 지역에서 조봉암의 득표율이 75%까지 치솟았다. 오히려 부산에선 이승만이 압승을 해서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다.]하면서 약 220만 표를 얻는 선전을 거두었다. 이 때의 선전을 기반으로 [[조봉암]]은 최초의 [[진보]]계열 [[정당]]인 [[진보당(1956년)|진보당]]을 조직하고 의욕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진보당 사건|자유당에서 그를 간첩으로 몰아가기 전까지.]]''' 여담이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투표율과 이승만 득표율에 있어서 그야말로 진기록이 세워졌다. 예를 들면 강원도 정선에서는 이승만 후보가 25,230표(무효표 포함) 중 25,122표'''(99.57%, 무효표 제외시 99.86%)'''를 득표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정선군에서는 투표율 또한 '''99.65%'''를 기록했다.-- 선거부정의 냄새가 느껴지면 지는 거다.-- 정선이 넘사벽이어서 그렇지 고성에서는 유권자 17,173명 가운데 기권자가 5명(!) 뿐이었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조봉암 후보는 승리를 거두었다. 구체적으로는 [[대구광역시]] 일대[* [[칠곡군]], [[경산시]], [[창녕군]], [[김천시]] 포함]와 [[경주시|경주]] 일대[* [[영천시]], [[양산시]], [[울산광역시]], [[기장군]] 포함], [[진주시]] 일대[* [[고성군(경상남도)]], [[통영시]], [[진해구]] 포함.], [[울릉도]]에서 그러하였다. 또한 지역별 투표율에서 [[대구경북]]이 가장 많은 지지세를 보여줬다. 이렇게 당시 경북 일대에서 높은 지지세를 보여준 이유는 이 지역은 당시 조선의 모스크바라 할 정도로 사회주의 성향이 강하였으며, 6.25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피해를 덜 입어서 북한에 대한 적대감도 다른 도에 비해 약했다는 점도 상대적 우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6.25 때 격전지였던 경북 북부, [[포항]] 일대는 이승만의 손을 들어주었다. 경상도의 이같은 정치 구도는 제5대 대통령 선거 때 그대로 재연되어, 사상 논란에 휩싸인 박정희는 혁신 세력의 지지를 받아 포항 등을 제외한 영남 지역 대부분을 석권했다. 반대로 [[강원도]] 일대에서 이승만 후보가 가장 많은 압승을 거두었는데 그 이유는 [[6.25 전쟁]]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타 지역에 비해 강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